오늘날 세계 인구를 100명으로 환산하면, 그중 36명은 중국과 인도에 거주하고 있다. 그러나 이 두 국가가 차지하는 국토 면적은 전 세계의 8.6%에 불과하다. 즉, 지구 전체에서 단지 10%도 되지 않는 면적에 인류의 3분의 1 이상이 밀집하여 살고 있다. 이처럼 비정상적인 인구 집중 현상은 단순히 현재의 높은 출산율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실제로 1700년 이후 중국과 인도의 인구 증가율은 세계 평균과 같거나 그보다 낮은 수준이었다. 그런데도 오늘날 이 두 나라는 세계 최대의 인구 대국이 되었다.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1. 이미 많은 인구를 가진 채 시작된 역사
중국과 인도가 오늘날 인구 대국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이들이 이미 수 세기 전부터 대규모 인구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700년경 중국의 인구는 약 1억3천만 명으로 추정되며, 이는 당시 세계 인구의 약 20%에 해당하는 규모였다. 이 시기의 연간 인구 증가율은 약 0.8%로, 세계 평균과 유사한 수준이었다. 인도의 경우, 인구 증가율은 0.7% 수준으로 세계 평균보다 다소 낮았으나, 이미 1600년대부터 중국과 유사한 규모의 인구를 유지하고 있었다. 즉, 인구 성장률 자체는 두드러지지 않았지만, ‘기저 인구’가 워낙 방대했기 때문에 장기적인 축적 효과로 인해 현재의 인구 대국이 될 수 있었다.
2. 인구 대국의 세 가지 기본 조건
많은 인구가 한 지역에 정착하고 유지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필수 요소가 요구된다. 첫째, 대량의 인구를 부양할 수 있는 안정적인 식량 생산 기반, 둘째, 식량 재배에 필수적인 물의 확보, 셋째, 다수의 인구가 정착할 수 있는 국토 면적이다. 인류 문명이 처음 탄생한 지역들을 살펴보면, 이 세 가지 조건이 모두 충족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나일강 유역의 이집트 문명,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유역의 메소포타미아 문명, 황허 유역의 중국 문명, 인더스강 유역의 인도 문명 등 주요 고대 문명은 모두 북회귀선 부근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는 곧 이 지역이 기후, 토양, 수자원 등 인류 생존에 가장 유리한 조건을 갖춘 지대임을 의미한다. 이후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강의 수가 적고 사막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대규모 인구를 유지하기 어려운 환경이 되었지만, 중국과 인도는 여전히 풍부한 강수량과 강 유역을 바탕으로 인구 성장의 기반을 유지할 수 있었다.
특히 두 나라는 조기에 벼농사를 도입하였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쌀은 같은 면적에서 재배할 경우 밀보다 약 3배 이상의 열량을 제공하므로, 인구 부양 능력이 월등히 높다. 또한, 따뜻하고 습윤한 기후 덕분에 연 2회의 작물이 가능한 이모작 체계를 구축할 수 있었고, 동물의 가축화와 농기구의 발전은 식량 생산력을 크게 높였다.
3. 경작할 수 있는 국토의 비율
국토 면적만으로 인구수용 능력을 판단하는 것은 오류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경작할 수 있는 땅’의 비율이다. 중국과 인도는 전체 국토 중 경작지 비율이 매우 높아, 상대적으로 작은 면적에서도 대량의 인구를 수용할 수 있다. 실제로 전 세계 경작지의 약 20%가 이 두 나라에 집중되어 있으며, 세계 쌀 생산량의 절반과 밀 생산량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인도는 전체 국토의 절반이 경작지로 활용되고 있다. 이는 호주나 캐나다처럼 국토는 넓지만 실제로 농업에 활용되는 면적이 전체의 7%에 불과한 국가들과 비교할 때,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수치다.
4. 정치적 안정성과 인구 유지
인구의 증가는 단순한 자연적 조건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정치적 안정은 인구 성장에 중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인도는 무굴 제국 등 장기간의 통일 국가 체제를 경험했으며, 중국 또한 수천 년에 걸쳐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 체제를 유지하였다. 이러한 정치적 안정은 내란에 따른 대규모 인명 손실을 방지하였고, 농경에 인력을 지속해서 투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였다.
5. 치명적인 전염병의 부재
중국과 인도는 역사적으로 유럽에 비해 상대적으로 치명적인 전염병으로부터 자유로웠다. 유럽에서는 중세 페스트로 인해 인구의 30% 이상이 사망하는 등 인구 감소의 심각한 사례가 있었지만, 중국과 인도는 천연두나 페스트 등의 치명적 유행병이 지역 사회 전체를 붕괴시킨 사례는 드물었다. 또한, 유럽에서 경험했던 대규모 이민이나 이주가 중국과 인도에서는 발생하지 않아, 인구가 외부로 대거 빠져나가는 일도 없었다.
6. 문화적 요소: 다산과 남아선호
문화적으로도 인구 증가에 유리한 요소들이 존재했다. 중국은 오랜 벼농사 중심의 사회 구조 속에서 남아선호 사상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으며, 가정마다 아들을 낳을 때까지 출산을 계속하는 경향이 강했다. 자녀가 많을수록 복이 많다는 인식도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인도에서는 자녀의 수를 신의 뜻으로 여기는 문화가 널리 퍼져 있었으며, 이에 따라 가족 단위의 출산 수가 많아지는 경향이 지속되었다.
7. 의학의 발전과 생존율 향상
20세기 들어 의학과 보건 기술이 발달하면서 영유아 사망률과 평균 사망률이 크게 낮아졌다. 이에 따라 기존의 높은 출산율과 결합한 인구의 자연 증가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특히 20세기 초반부터 말까지의 약 100년 동안, 중국과 인도의 인구는 약 3배 가까이 증가하는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이렇듯 중국과 인도의 인구 대국화는 식량, 수자원, 국토 활용도, 정치적 안정성, 문화적 요인, 의학 발전 등 복합적인 요소가 유기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도시화의 진전과 교육 수준의 향상으로 인해 출산율이 급격히 하락하고 있으며,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자녀 출산을 기피하는 경향이 확산하고 있다.
인구 유지에는 ‘대체 출산율(replacement fertility rate)’이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이는 한 여성이 평생 낳아야 하는 자녀 수가 평균 2.1명 이상이어야 인구가 장기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는 기준이다. 이 기준을 밑도는 국가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중국과 인도 또한 이러한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인구가 많아도 문제, 적어도 문제인 지금, 각국은 지속 가능한 인구 구조를 위해 고민을 멈출 수 없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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