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없이도 살 수 있지만, 오토바이 없이 살 수는 없다.” 이 표현은 동남아시아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이 지역 청년들에게 오토바이는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다. 휴대전화와 더불어 필수 생존 도구로 여겨진다.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주요 국가들에서 전체 가구의 80% 이상이 적어도 한 대 이상의 오토바이를 보유하고 있다는 통계는 이 현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오토바이는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사회적 지위와 부를 과시하는 상징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주요 도시의 교통체계는 이미 오토바이를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으며, 주차장, 신호 체계, 상점 입구 등 거의 모든 인프라가 오토바이 친화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더불어, 이들 운전자를 겨냥한 상업 활동은 동남아 경제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일본의 유명 오토바이 브랜드가 동남아 최대 축구대회인 스즈키 컵을 후원하는 이유도 바로 이 시장의 잠재력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이러한 오토바이 제국에도 균열의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각국 정부가 오토바이 규제, 나아가 도시 내 전면 퇴출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이토록 대중적인 수단을 규제 대상으로 전환한 것일까?
세계 최대의 오토바이 보급률
오토바이가 가장 많은 나라는 인도다. 인구 14억 명에 달하는 이 나라는 약 2억2천만 대의 오토바이가 등록되어 있다. 이어서 인도네시아가 1억1천만 대로 세계 2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베트남은 6,500만 대 이상으로 세계 4위다. 특히 베트남은 인구 1억 명 기준으로 보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오토바이 보급률을 보인다. 자동차보다 여섯 배나 많은 오토바이가 등록되어 있으며, 분당 5.8대가 판매되고 있다. 태국, 말레이시아, 필리핀도 상위권을 형성하며, 동남아는 명실상부한 오토바이 중심 지역임을 입증한다.
그렇다면 동남아 지역에서는 왜 이토록 오토바이가 대중화되었을까?
도시화와 대중교통의 부재
동남아 오토바이 급증의 가장 큰 배경은 지난 20여년간의 급격한 도시화이다. 산업화에 따라 대도시로 인구가 집중되었고, 이에 따른 교통 수요 증가에 대중교통 시스템은 전혀 대응하지 못했다. 예를 들어, 베트남의 호치민시는 단기간에 인구 천만을 돌파한 메가시티가 되었고, 광역권 인구는 2천만 명을 상회한다. 그러나 도시철도는 이제 막 건설을 시작했을 뿐이며, 대중교통 수단으로는 노선과 배차가 부족한 버스가 유일하다.
자카르타는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광역권 인구는 3천만 명에 이르지만 지하철 노선은 하나뿐이며, 도심의 평균 주행 속도는 시속 10km 이하에 불과하다. 방콕 역시 마찬가지다. 대중교통 확충 노력이 이어지고는 있지만, 1,500만 명이 넘는 인구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처럼 도시 성장에 필요한 인프라가 부실한 상태에서, 오토바이는 빠르고 저렴하며 유연한 이동 수단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좁은 도로, 높은 기온과 습도, 불규칙한 버스 운행은 오토바이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었으며, “도어 투 도어” 접근성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대중교통이 따라가기 어려운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규제의 칼날, 오토바이를 향하다
그러나 최근 동남아 각국 정부는 오토바이를 퇴출하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그 배경에는 무엇보다 심각한 대기오염 문제가 자리한다. 세계보건기구(WHO)와 기타 연구기관들은 자카르타와 하노이 등을 세계 최악의 대기오염 도시로 꼽고 있다. 베이징, 뉴델리, 라호르와 함께 이들 도시의 이름이 거론된다는 사실은 그 심각성을 말해준다.
오염의 주요 원인은 화력발전과 오토바이이며, 그중 규제 강도가 낮은 오토바이가 우선적인 규제 대상으로 지목되고 있다. 예를 들어, 베트남 정부는 2030년까지 대도시에서 오토바이 운행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발표했으며, 하노이에서는 일부 구간에서 2026년부터 제한을 시작한다. 자카르타 역시 같은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 중이다.
오토바이가 위험한 교통수단이 된 이유
대기오염 외에도 오토바이 규제의 원인은 다양하다. 첫째, 교통사고의 주요 원인이다. 태국에서는 매년 2만 명 이상이 오토바이 사고로 목숨을 잃고 있으며, 인도네시아는 세계 2위의 교통사고 사망률을 기록한다. 이 가운데 75%가 오토바이 관련 사고다.
둘째, 범죄 수단으로의 전락이다. 소매치기, 날치기 등 범죄에 오토바이가 악용되는 경우가 많아 도시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셋째, 무분별한 경적 사용과 소음 공해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그렇다면 동남아에서 오토바이를 정말로 퇴출할 수 있을까? 현실은 전혀 녹록지 않다. 대중교통 인프라가 충분히 구축되지 않은 상태에서 규제는 국민 저항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설령 교통수단이 보완되더라도 오토바이 특유의 기동성과 유연성을 대체하기란 쉽지 않다.
더 나아가, 오토바이에 기반한 상업 생태계 전체가 변화해야 한다. 차량 공유 플랫폼 그랩(Grab)과 고젝(Gojek) 같은 유니콘 기업은 대부분 오토바이 운전자에 의존하고 있으며, 배달 산업 또한 마찬가지다. 금융권에서는 오토바이를 담보로 제공하는 소액 대출이 보편화되어 있어, 오토바이 가치 하락은 금융 안정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동남아에서 오토바이 규제는 단순한 교통정책이 아니라, 산업, 환경, 사회, 금융 등 복합적인 영역에 걸친 구조 전환의 문제다. 그만큼 신중하고 장기적인 계획이 요구된다. 생계와 문화, 그리고 일상에 깊숙이 뿌리내린 오토바이를 대체하려면 단순한 규제를 넘어서는 ‘총체적 전환 전략’이 필요하다.
결국 오토바이의 운명은 동남아 각국이 대중교통, 도시계획, 친환경 기술, 사회안전망,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 중심의 전환’을 얼마나 철저히 준비하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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