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때로 너무도 일상적인 사물 속에서 드러난다. 그것이 음식이든, 옷차림이든, 또는 우산처럼 흔한 물건이라 할지라도. 독일 제국의 초대 수상, 일명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는 독일을 통일한 후 동아시아에 협력자를 찾기 위해 눈을 돌렸다. 그는 당시 청나라의 권신 이홍장을 선택했고, 협력의 뜻을 담아 독일산 순종 셰퍼드 두 마리를 선물로 보냈다. 그러나 몇 달 후 이홍장이 보낸 서신에는 단 한 문장만이 적혀 있었다.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이 짧은 문장은 양국 간 문화의 간극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독일인은 셰퍼드를 충직한 동반자로 여겼지만, 이홍장에게 개는 단백질 공급원일 뿐이었다. 결국 비스마르크는 이홍장을 문명과 함께할 수 없는 야만인이라 판단했고, 독일의 대중 전략은 미뤄졌다. 이후 두 사람은 20년 뒤 다시 만났지만, 이미 역사의 흐름을 바꾸기엔 너무 늦은 시점이었다.
이 일화는 문화적 상이성의 무지가 정치적 기회마저 잃게 만든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의 차이는 단지 외교 관계나 음식 취향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를 비 오는 날 우산을 쓰느냐, 쓰지 않느냐는 아주 일상적인 선택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비가 오는 날, 한국이나 일본의 거리에서는 사람들 대부분이 우산을 들고 걸어간다. 반면 런던, 시애틀, 암스테르담, 베를린의 거리에서는 종종 우산 없이 모자 하나만 쓴 채 거리를 걷는 서양인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들은 비에 젖지 않는 걸까? 아니다. 그들은 젖는 것을 개의치 않는다. 오리건주는 미국 내에서도 비가 자주 오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서 1,7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는 흥미롭다. 66%가 비가 와도 우산을 가져가지 않는다고 응답했고, 우산을 꼭 챙긴다고 응답한 사람은 단 5%에 불과했다. 그 이유는 의외로 단순했다. “두 손이 자유로운 것이 더 편하다.” 이러한 태도에는 기후와 환경도 한몫한다. 서양의 비는 동양의 장맛비처럼 쏟아지기보다는 잔잔하고 금세 그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바람이 강해 우산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은 경우도 흔하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오랜 시간 동안 비를 '오염된 물', 즉 산성비로 인식했다. 산업화 이후 대기 오염 문제가 심각해지며 ‘비는 건강에 해롭다’는 인식이 퍼졌다. 반면, 유럽과 북미에서는 상대적으로 공기 질이 양호했고, 비는 오히려 자연스럽고 깨끗한 것으로 여겨졌다.
이처럼 비에 대한 위생적, 환경적 인식의 차이 또한 우산 사용 여부에 영향을 미친다. 한국에서는 아이에게 우산을 챙겨주지 않으면 무책임한 보호자로 여겨지지만, 서양에서는 우산보다는 비옷을 입히는 것이 더 실용적인 대안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서양 남성들이 우산을 쓰지 않는 데에는 기후나 환경적 요인만이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이보다 더 깊은 문화적 심층에 작용하는 것은 남성성에 대한 집단적 인식, 즉 마초 이데올로기다. 특히 미국에서는 우산을 쓰는 남자를 나약하다고 보는 문화가 존재한다.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는 우산을 들고 다니는 것이 ‘부끄러운 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는 단지 편견이라기보다는 미국 내 마초 문화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예를 들어, 걸그룹 음악을 좋아하거나, 스킨을 바르거나, 백팩이 아닌 숄더백을 메거나, 와인을 즐기거나, 앞머리를 내리는 것만으로도 젊은 남성은 ‘남자답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이 같은 문화는 서부 개척 시대의 카우보이 이미지, 즉 거칠고 강인하며, 자연을 두려워하지 않는 남성상을 이상화한 데에서 유래한다. 하지만 미국의 중상류층, 특히 도시 거주자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마초 문화에 대한 반감이 강하다. 이들은 우산을 당당히 쓰며, 실용성과 위생을 중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우산은 본래 비를 막기 위한 도구가 아니었다. 영어로 'umbrella'라는 단어는 라틴어 'umbra'(그늘)에서 유래되었다.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왕족이나 귀족이 햇볕을 가리기 위해 양산 형태의 우산을 사용했고,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에도 우산은 여성 귀족의 햇빛 가리개였다. 비를 피하는 도구로 우산이 등장한 것은 훨씬 나중의 일이다. 17세기 프랑스에서 장 마리우스가 가벼운 접이식인 우산을 발명했고, 루이 14세가 그 디자인에 반해 5년간 생산 독점권을 부여했다. 이로써 우산은 귀족 남성의 실용적인 소품으로도 확산되었다.
18세기 중반, 영국의 조나스 한웨이는 런던에서 30년 넘게 우산을 들고 다녔다. 처음에는 조롱의 대상이 되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의 행동은 우산 보급의 신호탄이 되었고, 한때 우산은 '한웨이즈(Hanways)’라는 별칭으로 불리기까지 했다.
한편 19세기까지 유럽 거리에는 공중화장실이 부족했고, 사람들은 대소변을 요강에 받아 창밖으로 버리곤 했다. 따라서 신사들은 오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우산을 사용했다. 우산은 단지 비가 아니라 위생과 품위를 지키는 장치였던 셈이다.
오늘날 일부 남성들은 여전히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것이 ‘진짜 남자’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이것은 마초의 본래 의미를 왜곡한 결과다. ‘마초(macho)’는 스페인어로 ‘용감하고 존경받는 남성’을 뜻했다. 현대의 마초 이미지(거칠고 우악스럽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며 외모를 신경 쓰지 않는 남성상)는 오히려 사회가 강요한 억압된 남성성의 산물에 가깝다.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자기 돌봄을 창피하게 여기는 태도는 결코 건강한 남성상이라 할 수 없다. 진정한 마초는 비를 맞든, 우산을 쓰든, 그것이 자신의 선택이라면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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