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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모저모

일본에 경차가 많은 이유

by 밍떡자 2025. 5. 10.

경차는 일본의 거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전체 등록 차량의 약 35%가 경차이며, 이는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의 경차 사랑은 오늘날 갑자기 나타난 현상이 아니라, 이미 1980년대부터 꾸준히 30% 이상을 차지해 온 뿌리 깊은 문화다.
우리나라에서 경차 비율이 가장 높았던 해가 2012년이었고, 17%에 불과했던 것을 생각하면, 일본의 높은 경차 점유율은 단순히 ‘검소함’이라는 국민성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그 배경에는 일본만의 지리적, 역사적, 경제적 조건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좁은 땅, 높은 산, 그리고 빽빽한 인구]
우선 일본의 국토 면적은 한반도의 1.7배에 이른다. 하지만 이 넓은 땅이 전부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은 아니다. 일본은 전체 면적의 약 73%가 산지로, 실제 사람이 거주하거나 활용할 수 있는 평지는 매우 제한적이다. 산의 높이와 규모 역시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가장 높은 백두산은 2,744m이지만, 일본에는 후지산(3,776m)을 비롯해 3,000m가 넘는 산이 20개 이상, 2,000m 이상 되는 산만 해도 50개가 넘는다. 이처럼 높은 산이 많고 평지가 부족한 나라는 필연적으로 도시 밀집도와 교통 환경에 제약이 따른다. 일본은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높은 국가 중 하나로, 사람들이 살아가는 환경은 늘 비좁고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전쟁 이후,  실용적인 차를 만들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 재건이라는 국가적 과제를 안고 있던 일본은 ‘작지만 실용적인 차’에 주목하게 된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경차이다. 초기에는 엔진 150cc, 전장 2.8m, 전폭 1m에 불과할 정도로 작은 차량이었다. 오토바이보다 조금 큰 수준이었지만, 일본의 협소한 도로와 주차 공간, 그리고 왜소한 체격의 운전자들에게는 오히려 알맞은 선택이었다. 이후 꾸준한 기술 발전을 통해 경차는 배기량 660cc, 전장 3.4m, 전폭 1.48m로 성장했지만,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작은 자동차로 분류되며 대부분 내수용으로 소비되고 있다.

[차고지 증명제]
일본이 경차 중심 사회가 된 데에는 법적 제도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1962년부터 시행된 ‘차고지 증명제이다. 이 제도는 자신이 소유한 주거지 반경 2km 이내에 주차 공간을 확보해야만 차량 등록이 가능하게 한 것이다. 도심의 아파트나 주택에서는 주차 공간이 매우 귀하며, 이를 따로 임대해야 할 경우 도쿄 등 대도시에서는 한 달에 30만~50만 원 상당의 비용이 발생한다. 이처럼 주차 공간 자체가 사치에 가까운 일본의 도시 환경에서, 작은 차의 효율성은 매우 중요하게 작용하게 된다.
흥미롭게도, 1991년까지 경차는 이 차고지 증명제에서 면제 대상이었다. 즉, 따로 주차 공간을 증명하지 않아도 차량 등록이 가능했다. 이는 경제적 부담이 큰 도심 거주자들에게 경차를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일본은 지진이 잦은 나라로 지하 주차장이 거의 없는 대신, 협소한 공간에 효율적으로 차량을 보관할 수 있는 기계식 주차 타워가 일반화되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주차 설비는 차량의 크기와 무게에 제한이 있으므로, 경차가 더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저렴한 유지비와 경차의 경제성]
일본에서 자동차를 소유한다는 것은 단순한 이동 수단 이상의 경제적 부담을 의미한다. 차량 유지에 드는 각종 세금, 보험료, 정기 검사 비용 등이 높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경차는 ‘가성비’ 측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선택지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일본은 자동차세를 배기량을 기준으로 차등 부과하고 있다. 경차의 경우, 일반 승용차의 3분의 1, 많게는 10분의 1 수준의 세금만 납부하면 된다. 이는 단순히 초기 비용이 아닌 연간 유지 비용 측면에서도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
일본은 차량 검사 제도가 매우 까다롭고 비용도 비싸다. 특히 이 검사는 차량 무게에 따라 부과되는 세금과 검사 수수료가 함께 포함되며, 일반 승용차의 경우 한 번의 검사 비용이 100만 원을 넘기도 한다. 그러나 경차는 이 비용이 약 3분의 1 수준으로 저렴하다. 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차량 유지에 들어가는 총비용을 현격히 낮춰준다.

[연식에 따른 과세 구조]
일본의 자동차 과세 구조는 ‘시간이 지날수록 비용이 올라가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자동차의 연식이 오래될수록 세금과 검사 비용이 증가하는 구조는, 차량을 장기간 보유하는 것 자체를 경제적으로 부담스럽게 만든다. 일본 정부는 환경 보호와 차량 교체를 유도하기 위해, 자동차 연식이 오래될수록 자동차세와 차량 검사 비용을 점차 인상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10년 이상 된 차량은 자동차세가 기준치보다 15~20% 이상 높아지고, 정기 검사 시 부품 교체 항목이 증가하면서 검사 비용도 상승한다. 이는 곧 노후 차량 소유에 대한 '경제적 페널티'로 작용한다.
이러한 구조에서 일반 승용차를 오래 타는 것은 경제적으로 비효율적인 선택이 된다. 그렇다면 자주 바꾸는 것이 최선일까? 일본의 소비자들은 이에 대한 답을 ‘경차’에서 찾는다. 경차는 구입가와 유지비가 모두 저렴하며, 세금 증가 폭도 상대적으로 낮다. 자주 차량을 교체해야 하는 상황에서 경제적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대안이 되는 것이다.

[도로 환경과 대중교통 인프라]
일본의 도로 및 교통 환경은 경차 사용을 필연적으로 만든다. 좁은 도로 폭과 열악한 대중교통 인프라는 경차가 아닌 차량의 접근 자체를 어렵게 만들며, 자연스럽게 경차의 실용성이 부각된다. 일본의 도시 구조는 좁고 불규칙한 골목길로 가득 차 있다. 특히 도쿄, 오사카와 같은 대도시 외곽의 주택가는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도로 폭이 협소한 경우가 많다. 이런 구조에서는 회전 반경이 작고 차량 크기가 작은 경차가 사실상 유일한 선택지가 된다. 특히 운전이 익숙하지 않은 고령자, 여성 운전자들에게는 작은 차체와 쉬운 조작이 가능한 경차가 실질적인 대안이 된다.
일본은 대중교통이 잘 되어 있는 나라로 알려져 있으나, 이는 도심에 한정된 이야기다. 도시 외곽이나 지방으로 나가면 대중교통 인프라가 급격히 취약해진다. 외곽 지역에서는 차 없이는 일상생활이 어려운 수준이며, 버스 노선은 인구 감소와 인력난으로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경차는 단순한 저렴한 차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교통수단으로 기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