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동부, ‘아프리카의 뿌리(Root of Africa)’라 불리는 소말리아는 오랜 세월 외부의 관심에서 멀어진 채 살아왔다. 위성 지도로 이 나라를 내려다보면 국토 대부분이 거친 황무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농업은 극히 제한적이다. 그러나 3,000km가 넘는 긴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바다는 소말리아인들에게 풍요로운 생계를 약속하던 공간이었다. 전통적으로 어업은 이들에게 중요한 산업이었고, 잡아 올린 해산물은 유럽 시장으로 수출되어 국가의 주요 소득원이 되었다.
하지만 2022년 기준, 소말리아의 국민총소득은 약 80억 달러에 불과하다. 같은 해 대한민국의 국민총소득이 약 17,000억 달러임을 고려할 때, 그 격차는 실로 엄청나다. 그런데도, 오랜 시간 소말리아인들은 자신들의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삶에 만족하며 살아왔다.
1991년의 붕괴: 정권 몰락과 내전
불행은 1991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20여년간 지속되던 정권이 붕괴되며, 소말리아는 무정부 상태에 돌입했다.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군벌 간의 무력 충돌은 내전으로 번졌고, 그로 인해 국가 체계는 완전히 붕괴되었다. 내전은 단기간에 끝나지 않았다. 몇 년이 아닌 수십 년에 걸쳐 지속되며, 국민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져 갔다.
정권의 공백 속에서 기초 행정과 사회 시스템은 무너졌고, 교육과 보건은 물론 생계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이 벌어졌다. 가난은 더욱 심화되었고, 삶의 기반이던 바다마저 점차 그 기능을 상실하기 시작했다.
외부의 침입: 바다를 약탈당하다
국가 기능이 마비된 사이, 외부의 침입은 은밀하게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나타난 것은 예멘 어선이었다. 소말리아 해역에 침입한 이들은 불법 조업을 감행하며 수산 자원을 수탈하기 시작했다. 뒤이어 아시아와 유럽의 어선들도 몰려들었다. 이들은 소말리아 앞바다에서 새우, 참치, 가재 등 고부가가치 어종을 싹쓸이하며 소말리아인들의 생계를 파괴해 나갔다.
더 큰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유럽과 아랍의 산업 국가들은 각종 유해 산업폐기물을 소말리아 해역에 투기하기 시작했다. 폐기물 처리 비용을 아끼기 위해 군벌에게 소액의 대가를 지불하고 독극물과 방사성 폐기물을 해안선 가까이 투기한 것이다. 그 결과, 소말리아 연안 지역에서는 각종 질병이 창궐하기 시작했다. 피부병, 구토, 복통과 같은 증상부터 복부 출혈과 암에 이르기까지, 바다에 의존하던 주민들은 말 그대로 생존의 기반을 잃었다.
자구책에서 범죄로: 해적의 탄생
처음 소말리아인들은 자구책으로 '자치 해안 경비대'를 조직했다. 군벌에게 무기를 빌리고, 자신들이 사용하던 어선을 활용해 불법 어선을 쫓아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오래가지 못했다. 누군가 예멘 어선의 조업을 묵인한 대가로 1만 달러를 받았다는 소문이 퍼졌고, 이는 전환점이 되었다.
장기간의 내전으로 총기 사용에 익숙했던 사람들, 일거리를 잃은 어부들, 쓸모를 잃은 어선이 모두 맞물리면서 소말리아 전역에는 ‘해적’이라는 새로운 생존 방식이 빠르게 확산되었다. 초기 해적질은 불법 조업선에 벌금을 부과하는 수준이었지만, 점차 금전적 이득이 커지자 군벌까지 가세하며 조직적인 범죄로 발전해 나갔다.
해적의 시스템화: 생계의 산업화
소말리아 해적들은 단순한 무장 단체가 아니었다. 첨단 위성항법 장비와 통신 시스템을 갖춘 모선을 띄워 주요 항로를 감시하고, 쾌속정과 자동화기, 로켓 발사기를 이용해 선박 납치를 감행했다. 그들이 활동한 아덴만은 매년 30,000척 이상의 선박이 오가는 국제 무역의 요충지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2009년에서 2010년 사이, 소말리아 해적은 연간 약 300척의 선박을 납치하고, 그 대가로 1억 달러에 달하는 몸값을 갈취하였다. 해적질은 하나의 산업이 되었고, 인질을 위한 식량과 의료품을 공급하는 전문 업체까지 생겨났다. 소말리아 사회 내부에서는 해적이 ‘유능한 생계형 남성’으로 간주되며, 해적이 최고의 신랑감으로 평가받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국제 사회의 개입과 해적 활동의 쇠퇴
국제 사회는 이를 더 이상 묵과할 수 없었다. 각국은 군함을 아덴만에 파견하며 소말리아 해적 소탕 작전에 나섰고, 민간 선박들 또한 무장 보안요원을 고용해 해적 대응 능력을 강화했다. 그 결과, 해적 활동은 점차 줄어들었고, 2019년 이후로는 공식적으로 납치 사례가 보고되지 않았다.
그러나 표면적인 해적 문제의 해소와 달리, 보다 근본적인 문제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산업 폐기물 투기와 불법 조업은 지금도 소말리아 앞바다에서 자행되고 있으며, 그로 인한 환경 피해와 자원 고갈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해적질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던 소말리아인들은 다시 한번 절망적인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
소말리아의 해적 문제는 단순한 범죄가 아니다. 그것은 오랜 내전, 외세의 침탈, 환경 파괴, 빈곤이라는 복합적 위기의 산물이다. 물론 해적 행위는 국제법상 명백한 범죄이며,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그들과 같은 절망의 환경에 처한다면, 그들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소말리아의 비극은 단지 한 국가의 파국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국제 사회의 무관심과 경제적 탐욕이 한 나라와 그 국민에게 어떤 상처를 남기는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경고다. 소말리아의 바다는 아직도 우리에게 묻고 있다. "당신이라면 무엇을 선택할 수 있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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