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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모저모

유럽 도시가 밀집 구조인 이유

by 밍떡자 2025. 5. 23.

유럽 도시를 처음 방문하는 이들이 가장 먼저 감탄하게 되는 것은 도심을 가득 채운 오래된 건축물들이다. 그러나 더욱 인상적인 것은 이러한 건물들이 마치 하나의 거대한 구조물처럼 서로 붙어 있어, 거리를 따라 늘어선 건물들이 장벽처럼 느껴질 정도로 밀집해 있다는 점이다. 런던, 파리, 로마와 같은 유럽의 역사적 대도시들은 집과 집, 건물과 건물이 바늘 하나 들어갈 틈도 없이 서로 이어져 있으며, 이로 인해 도시의 전체적인 모습이 독특하고 응집력 있는 인상을 준다.
이와 같은 도시는 현대에 흔히 볼 수 있는 북미나 아시아의 도시와는 확연히 다르며, 유럽 이민자들이 건설한 미국의 구도심조차도 이러한 구조와는 거리가 있다. 유럽 도시의 이러한 밀집 구조는 단순한 미관이나 전통을 넘어서, 수 세기에 걸친 역사적 흐름과 사회적 요구, 그리고 정치적·경제적 필요의 결과였다.

유럽 도시의 쇠퇴와 장원제의 지배
서로마 제국의 멸망(서기 476년)은 유럽 도시의 위축을 가져왔다. 게르만족의 대이동, 이슬람 세력의 지중해 무역 장악, 그리고 팍스 로마나의 종식은 도시의 해체와 지방 분권화를 가속하였다. 이 시기 유럽 사회는 농업 중심의 장원제로 재편되었고, 자급자족을 기본으로 하는 농촌 경제가 지배적인 체제로 자리 잡았다. 도시는 교역의 중심에서 멀어졌고, 수많은 로마 도시는 폐허가 되었다.

중세 도시의 재건과 상인의 부상
11세기에 접어들며 유럽은 다시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게르만족의 정착, 이슬람 세력의 후퇴, 그리고 지중해 무역의 회복은 도시의 재건을 가능하게 했다. 특히 기후의 온난화는 농업 생산력을 증가시켰고, 이는 인구 증가로 이어졌다. 이 시기 십자군 원정은 교역망을 확장했으며, 상인 계층은 도시의 새로운 주역으로 부상했다.
도시는 강가, 교차로, 항구 등 교역에 유리한 장소에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되거나, 왕과 귀족에 의해 계획적으로 건설되었다. 파리, 런던, 피렌체, 밀라노, 베네치아 등 대도시는 물론, 수천 개에 달하는 중소도시들이 유럽 전역에 생겨나며, 중세 말기 유럽은 분산된 도시 네트워크를 갖춘 상업의 대륙으로 변모하였다.

성벽 도시와 건축의 집적화
중세의 도시는 외부의 침입에 항상 노출되어 있었다. 바이킹의 침입, 영주 간의 전쟁, 그리고 도적들의 약탈은 도시를 견고한 성곽으로 감싸게 했다. 성벽을 두르고 해자를 파는 데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었으며, 이 때문에 도시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최대한의 인구와 상업 활동을 수용해야 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합벽 건축’이라 불리는 구조가 정착되었다. 두 집이 벽을 공유하는 방식은 공간을 절약할 뿐만 아니라, 건축 자재와 비용을 절감하는 효과가 있었다. 귀족의 저택이든 장인의 소박한 작업장이든, 대부분의 건물은 이 구조를 따랐으며, 도시 전체가 마치 거대한 퍼즐처럼 서로 맞물려 구성되었다.

세금 제도와 공간 구성의 변화
건축 밀집도의 또 다른 원인은 중세의 세금 제도였다. 일부 도시에서는 집의 전면 폭에 따라 세금이 부과되었고, 이에 따라 도시민들은 좁고 깊은 집을 설계하였다. 집 앞은 도로에 바짝 붙였고, 집 뒤에는 정원이나 중정을 두어 사적인 공간을 확보하였다. 창문 개수에 따른 세금 제도가 시행되자, 일부 시민들은 아예 벽을 공유하거나 창문 수를 줄여 세금을 피하려 하기도 했다.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은 이러한 과세 구조가 특히 뚜렷한 사례이다. 이 도시는 도로가 아닌 수로를 중심으로 계획되었고, 수로와 접하는 면적에 따라 세금이 매겨졌다. 결과적으로 집은 수로에 길게 면하도록 설계되었고, 폭은 좁고 깊은 형태를 띠게 되었다.

도시 공간의 사회적 의미
밀집된 도시 구조는 단순한 공간 활용의 결과만은 아니었다. 상인과 장인의 인구가 많아질수록 상업 규모는 확대되었고, 이는 곧 귀족과 왕에게 더 많은 세금 수입과 통행세 수입을 보장했다. 동시에 도시의 인구가 많을수록 외부 침입에 대한 방어력도 향상했다. 이러한 이중적 이익은 도시에 대한 왕과 귀족의 관심을 더욱 키웠고, 도시 개발은 ‘수익성 높은 사업’으로 주목받게 되었다.

도시 구조의 한계
하지만 성곽 도시의 한계도 명확했다. 인구가 증가하면서 성 안의 공간은 점점 부족해졌고, 성벽의 확장은 물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어려웠다. 성 안에 거주하는 것은 특권이 되었고, 많은 이들은 성 밖으로 밀려났다. 이러한 변화는 ‘성 안에 사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부르주아(bourgeois)라는 사회 계층 개념을 낳았다.
또한 밀집 구조는 전염병의 확산, 화재의 대규모 피해라는 부작용을 낳았다. 그런데도 유럽 도시는 도시적 삶의 매력을 포기하지 않았고, 사람들은 여전히 도시로 몰려들었다. 시간이 흐르며 성벽이 철거되자, 집들이 줄지어 늘어선 그 모습은 더욱 두드러졌고, 오늘날 우리가 유럽 도시에 대해 느끼는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게 되었다.

오늘날 유럽 도시는 근현대 도시계획의 논리로는 쉽게 설명할 수 없는 밀도와 질서를 보여준다. 이러한 도시는 방어와 상업, 세금 회피와 난방 효율, 그리고 계급 사회의 역학까지 다양한 요소들이 교차한 결과이다. 이로 인해 유럽의 도시는 단순한 주거 공간을 넘어, 유럽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사회구조를 증언하는 살아 있는 박물관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유럽의 도시가 단지 '오래된 건물들로 이루어진 도시'가 아니라, 수 세기의 삶과 제도, 갈등과 협력의 역사가 녹아 있는 공간임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오늘날 전 세계 여행자들이 유럽의 도시들을 찾아가는 진정한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