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오면 누구나 한 번쯤은 눈밭에 무언가를 만들어 본다. 그중에서도 가장 보편적인 것은 바로 눈사람이다. 아이들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눈사람은 어릴 적의 따뜻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겨울의 상징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순한 눈사람조차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은 무척 흥미롭다. 이 글에서는 눈사람을 통해 동서양의 사상, 관습, 그리고 미적 감각의 차이를 탐구해 보고자 한다.
1. 눈사람의 구조: 2단과 3단의 문화적 상징
눈사람의 구조는 문화적 차이를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동양, 특히 한국, 중국, 일본에서는 눈사람이 일반적으로 머리와 몸통으로 구성된 2단 구조로 만들어진다. 반면 서양, 특히 유럽과 북미권에서는 머리, 몸통, 다리 부분까지 더해진 3단 구조가 표준이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인기 캐릭터 ‘올라프’를 떠올리면 이 구조가 더욱 명확히 이해된다.
이러한 차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일부에서는 동양의 좌식문화와 서양의 입식 문화가 눈사람 구조에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동양에서 바닥에 앉는 생활 방식은 사람 형상을 두 부분으로만 요약해도 충분한 데 비해, 입식 생활에 익숙한 서양에서는 다리까지 포함된 세 부분이 보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해석으로는, 동양에서 숫자 2가 음양의 균형을 상징하고, 서양에서 숫자 3이 완전함과 삼위일체 등을 의미한다는 문화적 상징성이 눈사람에 반영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가장 현실적인 설명은 바로 체격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서양인은 평균적으로 키가 크고, 동양인은 상대적으로 작다. 따라서 서양에서 눈사람을 두 덩이로 만들 경우, 아래쪽 눈덩이가 지나치게 커져 작업이 번거로워질 수 있다. 결과적으로 눈덩이를 세 부분으로 나누는 3단 구조가 작업 효율과 안정성 측면에서 더 적합하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반면, 동양에서는 2단만으로도 적절한 높이와 형태를 만들 수 있어 굳이 세 부분으로 나눌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2. 눈사람의 얼굴: 크기와 장식의 차이
눈사람의 얼굴을 구성하는 방식에서도 차이는 뚜렷하다. 서양의 눈사람은 얼굴이 상대적으로 작고 입체적이다. 이는 구조적인 이유 외에도, 서양인의 작고 입체적인 얼굴형이 반영된 결과일 수 있다. 이들은 당근을 이용해 코를 길게 표현하며, 눈과 입도 입체적으로 꾸민다. 이러한 방식은 서양인의 뚜렷한 이목구비와도 상응한다.
반면 동양의 눈사람은 보다 평면적이고 단순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 눈, 코, 입을 숯이나 나뭇가지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으며, 입체적인 형태보다는 정적인 표정이 강조된다. 이처럼 단순한 도구를 통해 얼굴을 표현하는 방식은 미니멀한 미학과 실용성을 중시하는 동양적 특성과도 맞닿아 있다.
3. 몸통 장식: 단추와 고름
눈사람의 몸통 장식에서도 문화적 차이가 엿보인다. 서양의 눈사람은 종종 몸통에 둥근 단추 모양의 장식을 붙인다. 이것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서양 복식 문화의 상징이기도 하다. 단추는 기원전 6000년경 고대 이집트에서 이미 존재했지만, 실제로 옷을 여미는 도구로 자리 잡은 것은 중세 이후였다. 특히 11세기 십자군 원정 이후 단추는 일상복에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이는 눈사람의 장식에도 자연스럽게 반영되었다.
반면 동양의 복식은 오랜 시간 동안 고름과 매듭을 활용한 형태를 유지해 왔다. 따라서 눈사람의 몸통에 단추를 다는 문화는 형성되지 않았다. 눈사람의 장식이 그 사회의 일상복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이는 자연스러운 결과라 할 수 있다.
4. 역사 속 눈사람: 기록과 상징
눈사람의 역사는 의외로 오래되었다. 밥 에크스타인(Bob Eckstein)의 'The History of the Snowman'에 따르면, 유럽에서 눈사람의 존재가 문헌에 처음 등장한 것은 1380년이다. 중세의 기도서에는 유대인 모자를 쓴 눈사람이 삽화로 실려 있었는데, 이는 눈사람이 종교적 혹은 정치적 상징으로 사용되었음을 시사한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미켈란젤로가 메디치 가문의 의뢰를 받아 정원에 눈사람을 만든 일화도 있다. 예술적 감각이 뛰어났던 그가 만든 눈사람의 모습은 상상 속에서만 그려볼 수 있지만, 당시 눈사람이 단순한 장난감 이상의 의미를 지녔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중국에서는 송나라(10~13세기) 시기부터 눈과 관련된 창작 활동의 기록이 남아 있다. 특히 눈사람보다는 ‘눈사자’가 더 흔하게 만들어졌는데, 이는 사자가 부와 권력, 길조를 상징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일반 백성들은 값비싼 석사자 대신 눈사자를 만들어 길운을 기원하였다. 이후 청나라로 접어들면서 점차 눈사람이 더 흔해지며 서양의 영향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눈사람에 대한 고문헌 기록이 거의 없지만, 재야사학자 박창화의 역사소설 '을불대왕전'(20세기 초)에서 눈사람이 언급된다. 이는 눈사람이 기록할 가치가 없다고 여겨졌기 때문이지, 실제로 만들지 않았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5. 현대의 변화: '올라프'와 눈사람의 글로벌화
최근 한국에서도 3단 눈사람이 점차 일반화되고 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인기로 인한 문화적 수용의 하나로 볼 수 있으며, 특히 캐릭터 ‘올라프’의 영향이 크다. 단순한 문화 수입을 넘어, 이 변화는 한국인의 체격이 점차 서구화되고 있다는 사회적 흐름과도 연결되어 있다.
눈사람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체형, 생활방식, 미의식, 복식문화까지도 담아내는 거울이라 할 수 있다. 단순한 눈덩이 세 개를 쌓은 형상이지만, 그 속에는 다양한 문화 코드가 축적된 것이다.
눈사람은 그 자체로 겨울의 놀이이자, 문화의 한 단면이다. 눈으로 만든 작은 조각에 지나지 않지만, 이 조형물에는 각 문화가 지닌 미의식, 생활양식, 심지어 사회 구조까지 투영된다. 동서양의 눈사람은 단지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졌을 뿐 아니라,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눈사람은 일상의 인문학이자, 무심히 지나쳐온 문화의 지도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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