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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모저모

고양이를 가장 사랑하는 나라, 일본

by 밍떡자 2025. 5. 21.

일본은 오늘날 세계에서 고양이를 가장 사랑하는 나라 중 하나로 꼽힌다. 반려묘 전용 아파트의 분양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상점마다 복을 부른다는 ‘마네키네코’가 손님을 맞이하며, 일부 신사에서는 고양이가 신으로 숭배되기까지 한다. 문학과 영상 매체에서도 고양이는 지속해서 주요 소재로 등장해 왔다.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만화 원작 영화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 전래 설화를 기반으로 한 '고양이의 보은' 등은 모두 일본 대중문화 속 고양이의 상징적 위상을 보여준다. 또한 헬로키티, 도라에몽과 같은 고양이 캐릭터들은 일본 국내를 넘어 세계적으로도 높은 인지도를 자랑한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한 문화적 기호를 넘어 ‘네코노믹스’라 불리는 경제적 파급효과로 이어지고 있다. ‘고양이(네코)’와 ‘경제학(economics)’의 합성어인 네코노믹스는 반려묘 문화로 인한 경제적 부가가치를 지칭하며, 2023년 일본 요미우리신문 보도에 따르면 그 시장 규모는 약 20조 원에 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러한 고양이 열풍은 비교적 최근에 형성된 현상이다. 본 글에서는 일본에서의 고양이 선호도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고찰하고, 그 배경에 자리한 사회문화적, 인구학적, 경제적 요인을 분석함으로써 반려동물 선호도 변화가 사회 전반에 미치는 함의를 논의하고자 한다.

고양이와 인간 사회의 관계
고양이는 약 700만 년 전 지구상에 등장했으나, 가축화된 시점은 약 1만 년 전 이집트에서부터이다. 당시 나일강의 범람을 기반으로 농업이 발달하면서 곡식을 갉아 먹는 설치류의 피해가 빈번했고, 이에 따라 인간은 자연스럽게 고양이를 길들이게 되었다. 이집트 사회는 고양이를 신성한 동물로 여겨 해외 반출을 금지하기까지 하였으나, 페니키아 상인들의 밀거래를 통해 고양이는 지중해 전역으로 확산되었고, 기원전 2세기경에는 중국에, 6세기경에는 불교 전파를 통해 일본에 도달하게 된다.
고양이와 개의 인간 사회 내 위상 차이는 가축화 시기의 차이와도 연관이 있다. 개는 약 3만 년 전부터 인간과 공생 관계를 맺으며 그에 맞게 진화해왔지만, 고양이는 비교적 최근까지도 야생성을 다수 유지해 왔다. 이러한 생물학적 배경은 고양이가 인간에게 덜 헌신적이고 독립적인 동물로 인식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일본의 반려동물 문화 변천
1983년 일본에서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당시 국민의 약 59%가 고양이를 선호하지 않는다고 응답하였다. 반려동물로서의 대표 주자는 오랜 시간 동안 개였다. 1990년대 후반까지도 애완동물을 기르는 가정에서 개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그러나 2017년 사육 실태 조사에 따르면 고양이가 반려동물 선호도에서 처음으로 개를 앞지르는 결과가 나타났으며, 이는 단순한 유행이 아닌 사회 구조 전반의 변화와 깊은 연관이 있다.

1) 고령화
일본의 급격한 고령화는 반려동물 선호의 변화를 유도한 주요 요인 중 하나이다. 2022년 기준으로 일본 인구의 약 15%가 75세 이상이며, 80세 이상 인구도 10%에 달한다. 고령 인구는 개를 기르기 위해 요구되는 일상적인 산책과 활동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반면 고양이는 비교적 관리가 수월하며, 실내 생활에 적합해 고령자에게 적절한 반려동물로 인식되고 있다.

2) 1인 가구 증가
일본의 1인 가구 비율은 2010년 32%에서 2020년 38%로 상승했으며, 이 비율은 지속해서 증가하는 추세이다. 1인 가구는 시간적, 물리적 제약이 크기 때문에, 배변 훈련이 필요 없고 분리불안이 덜한 고양이를 선호하게 된다. 특히 도심의 직장인들 사이에서 고양이는 바쁜 일상과 양립할 수 있는 반려동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3) 주거 환경의 변화
과거 일본에서는 단독주택에서 거주하는 비율이 높았으나, 점차 아파트나 맨션 등의 공동주택 비율이 증가하였다. 단독주택에서는 외부 경계 역할을 기대할 수 있는 개의 역할이 컸으나, 공동주택에서는 소음과 사생활 보호가 중시되면서 고양이가 더 적합한 반려동물로 평가받고 있다.

4) 경제 불황과 소비 구조의 변화
경제학자들은 반려동물 선호의 변화가 경기 상황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분석한다. 경기 호황기에는 개를 위한 넓은 주택과 마당을 마련할 수 있었지만, 장기적인 경기 침체와 함께 고양이의 실내 친화적 특성이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2007년 와카야마현의 간이역을 살린 고양이 ‘타마’의 사례는 상징적이었으나, 이미 형성되고 있던 사회적 분위기와 수요가 이러한 변화를 실질적으로 견인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비용적 요인과 문화적 인식의 변화
반려묘는 반려견보다 일반적으로 유지 비용이 낮다. 예방접종이나 병원 방문 빈도가 낮고, 필수 구매 용품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일본 내 조사에 따르면 반려묘 양육 비용은 반려견보다 약 40%가량 저렴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장기간 실질 임금이 정체된 일본 사회에서, 고양이는 경제적으로 부담이 덜한 선택지로 인식되고 있다. 이로 인해 일부에서는 반려견이 점차 부유층의 상징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더불어 일부 젊은 남성층 사이에서는 ‘고양이를 기르는 남성’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가 형성되며, 라이프스타일과 개성의 표현 수단으로서 고양이 양육이 문화적으로 소비되는 경향도 나타난다.
한국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포착되고 있다. 2024년 기준, 반려견을 키우는 가정 수는 여전히 반려묘보다 약 2.7배 많지만, 반려묘 증가율은 13%로 반려견(5%)보다 높다. 고령화와 1인 가구 증가, 도시화라는 공통된 사회 변화는 한국에서도 반려동물 선호의 재편 가능성을 시사한다.
EU 국가들 또한 고령화와 인구 감소라는 구조적 문제를 공유하며, 고양이와 개의 선호 비율이 유사해지고 있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반려묘 수가 반려견 수를 거의 두 배 가까이 앞지르고 있으며, 이는 전통적 반려동물 문화가 사회 변화에 따라 얼마나 유연하게 변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

일본에서 고양이가 반려동물로 부상한 현상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고령화, 1인 가구 증가, 도시 주거환경의 변화, 경제적 요인 등 복합적인 사회구조적 변화의 결과이다. 이러한 흐름은 일본만 아니라 한국, 유럽 등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앞으로의 반려동물 문화 역시 사회 구조의 변화와 긴밀히 연동되어 진화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