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주거 문화에서 방충망은 너무나도 당연한 요소다. 여름철 창문을 열어놓고도 모기나 파리의 침입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생활은, 일상 속 편의를 넘어 위생과 건강을 지키는 최소한의 장치로 여겨진다. 그러나 유럽을 여행하거나 그곳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는 이들이라면 공통적으로 느끼는 의문이 있다. “왜 유럽의 창문에는 방충망이 없을까?”
단순히 '모기나 파리가 없어서'라고 단정짓기에는 무리가 있다. 유럽 대륙의 여름에도 분명히 모기와 파리는 존재하며, 이들은 사람을 물기도 한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방충망이라는 간단한 해결책을 선택하지 않는 걸까? 이는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기후, 주거 형태, 해충에 대한 인식, 문화적 수용성 등 복합적인 요인이 얽힌 생활문화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본 글에서는 유럽 각국의 기후 특성과 모기 서식 환경, 주택 구조, 위생 개념, 그리고 방충망의 유무가 삶에 미치는 영향 등을 다각도로 살펴보며, ‘불편함을 감수한다’는 표현 이면에 존재하는 문화적 맥락과 인식의 차이를 심층적으로 탐구하고자 한다. 이는 단지 창문 하나의 차이를 넘어, 서로 다른 문명이 일상 속 불편함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사례가 될 것이다.
유럽 주거문화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건축물 자체의 구조적 차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유럽과 한국은 기후, 지질, 건축 재료에 있어 뚜렷한 차이를 보이며, 이는 곧 주택의 형태와 기능적 요소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유럽의 전통 건축은 주로 돌과 벽돌을 기본 재료로 삼아왔다. 이는 단순한 문화적 선택이 아니라, 지반이 안정적이고 연중 강수량이 비교적 고르게 분포되어 있는 유럽의 자연 환경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에 약한 재료를 사용해도 침수나 지반 침하에 대한 우려가 적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건은 수 세기 동안 무너짐 없이 버텨온 석조 건물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유럽의 많은 유적지에서 지붕이나 내부 구조는 무너졌어도, 벽만큼은 온전히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벽’은 유럽 건축에서 구조적 중심을 이루는 요소다.
문제는 이러한 ‘벽 중심’ 구조에서는 창을 내는 것이 구조적으로 매우 까다롭다는 점이다. 벽돌과 돌은 하중을 견디는 데 강하지만, 수평으로 긴 창을 낼 경우 상부의 무게를 지탱하기 어렵다. 벽이 무너지면 곧 건물 전체가 무너질 수 있으므로, 창은 어쩔 수 없이 가로는 짧고 세로가 긴 형태로 설계될 수밖에 없었다.
햇빛을 들이고, 연기를 배출하기 위해 창은 필수적이었지만, 유럽에서는 19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굴뚝이 보편화되지 않아, 창이 실내 연기의 주요 배출구 역할을 했다. 이는 창이 작을 수 없다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 형태는 여전히 구조적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유럽 특유의 좁고 긴 창이 발달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창 하나를 둘러싼 건축 방식의 차이는, 후속적으로 방충망의 설치 가능성과 필요성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구조적으로 창이 작고, 자주 여닫기 불편한 구조라면, 한국식의 방충망 설치는 문화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자연스럽지 않았을 것이다.
유럽의 창이 좁고 세로로 긴 형태를 띠게 된 이유는 비단 건축 구조상의 제약 때문만은 아니었다. 역사적으로 ‘세금’ 역시 창문의 형태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였다.
18세기 프랑스의 루이 16세는 영국이 도입한 ‘창문세(Window Tax)’ 제도를 주목하였다. 당시 영국은 건물에 설치된 창문의 수에 따라 세금을 부과했는데, 이는 비교적 간단하면서도 실효성 높은 과세 방식으로, 국가 재정을 충당하는 데 유용한 수단이 되었다. 프랑스 역시 이를 도입하되, 영국과는 다른 방식으로 창문의 ‘폭’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였다.
이처럼 프랑스의 창문세는 단순히 수량이 아닌 창문이 차지하는 면적, 그중에서도 특히 가로 폭을 기준으로 세금을 매겼다. 폭이 넓을수록 더 많은 자재와 노동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드는 구조에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한 셈이다. 이는 당시로서는 나름의 과세 형평성을 고려한 조치로 여겨졌다.
그러나 국민의 입장에서는 세금을 피하려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이에 따라 사람들은 점점 가로 폭이 좁고 세로로 긴 창문을 선택하게 되었고, 이러한 창의 형태는 문화와 건축양식으로까지 굳어져 19세기까지 유럽 각국에 널리 영향을 미쳤다.
이와 더불어 유럽의 많은 도시에서는 건물이 도로와 맞닿은 정면의 폭에 따라 세금을 매기는 방식도 병행되었다. 이로 인해 정면은 좁고, 안쪽으로 깊게 뻗은 구조의 건물들이 흔하게 되었으며, 자연스럽게 창문도 폭이 좁을 수밖에 없었다.
반면 한국은 기후와 지반 특성상 유럽과는 전혀 다른 건축적 선택을 해왔다. 여름철 집중적인 장마로 인해 지반이 약해지기 쉬운 한국에서는 무거운 돌이나 벽돌 대신, 상대적으로 가벼운 나무를 주된 건축 자재로 사용하였다. 이는 곧 벽체가 하중을 견디는 구조가 아니라, 기둥이 지붕을 떠받드는 구조로 이어졌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벽을 단단하게 막을 필요가 없으므로, 수평으로 넓은 창문을 내는 것이 가능하였다. 게다가 창문을 한지로 마감함으로써 구조적 부담도 줄일 수 있었다. 처마를 길게 내어 기둥이 빗물에 젖는 것을 방지하고, 주춧돌 위에 기둥을 세워 습기를 차단하는 등의 방식은, 건축이 자연 환경에 얼마나 정교하게 대응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런 전통 속에서, 한국의 집은 비교적 개방적인 창 구조를 갖게 되었고, 이는 방충망 설치의 기반이 되는 넓은 창, 자주 여닫는 구조의 전제가 마련된 셈이다.
한편, 미국이나 캐나다의 경우는 또 다른 배경을 갖는다. 이들 국가는 유럽과 달리 지반이 약해서 나무를 사용한 것이 아니라, 신대륙 개척 초기에 풍부하게 존재하던 나무를 가장 효율적인 건축 자원으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석재보다 훨씬 시공이 빠르고 쉽게 구할 수 있었던 나무는, 초기 이주민들에게 가장 적합한 건축 자재였다. 그 결과 북미 지역의 주택들 또한 수평으로 넓은 창을 가진 구조가 일반화되었고, 이로 인해 한국과 마찬가지로 방충망 설치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방충망 설치 여부는 단순히 필요성과 위생의 문제가 아니다. 창문의 형태, 즉 개폐 방식과 구조는 방충망 설치 가능성과 직결되며, 이는 각국의 건축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
한국의 주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미서기창(가로로 미는 방식의 창)은 방충망 설치에 매우 적합하다. 창틀의 바깥쪽에 고정형 또는 슬라이드형 방충망을 설치하면, 창문을 여닫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 유럽의 주택에서는 주로 틸트 앤 턴(Tilt and Turn) 방식의 창이 사용된다. 이 창은 안쪽으로 열리거나 위쪽이 살짝 기울어진 형태로 열리는데, 이는 바람 순환과 보온에 효과적이지만, 외부에 방충망을 설치하기에는 구조적으로 불리하다. 창이 안으로 열리기 때문에, 방충망을 바깥에 설치하면 개폐가 거의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물론, 창문 전체를 덮는 고정형 방충망을 설치하는 방법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 경우, 창문을 통해 바깥을 볼 때마다 방충망이 시야를 가리는 문제가 생긴다. 게다가 유럽의 많은 사람들에게는 창을 통해 외부 경치를 감상하는 일이 일상적인 즐거움 중 하나이므로, 이를 감수하면서까지 방충망을 설치하는 것은 실용성과 심미성 면에서 매력적이지 않다.
오늘날 유럽에서도 과거와 달리 돌이나 벽돌 대신 철근 콘크리트를 사용한 주택이 보편화되었고, 이론적으로는 가로로 넓은 창을 만드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나 여전히 세로로 긴 창이 주류를 이루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건축 현장에서 틸트창이 이미 보편화되어 시공이 편리하다는 점, 또 하나는 이 창이 열 효율 면에서 우수해 난방에 더 유리하다는 점이다. 즉, 과거의 건축 규제나 세금 제도가 사라진 오늘날에도, 유럽의 창은 문화적 관성과 기능성이라는 두 가지 요인에 의해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창문 구조의 차이는 곧 방충망 설치의 난이도와 실용성으로 이어지며, 결국 이는 우리가 쉽게 간과하는 생활환경의 문화적 차이로 나타나게 된다.
유럽에서 방충망이 흔하지 않은 이유는 단지 창문 구조 때문만은 아니다. 많은 유럽인들은 방충망을 굳이 설치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그만큼 곤충이 적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해, 유럽 전역의 곤충 밀도를 과학적으로 비교한 명확한 통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름철 유럽을 방문해본 이들이라면 공감하듯, 유럽의 여름은 한국보다 확실히 벌레가 적다. 이는 유럽 대륙이 지닌 고온·건조한 기후 특성과 무관하지 않다. 습도 높은 환경에서 왕성하게 번식하는 모기나 파리와 달리, 유럽의 여름은 비교적 건조해 곤충의 활동이 제한적이다.
결국 유럽에서는, 일 년에 몇 차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소수의 벌레 때문에 시야를 가리고 미관을 해칠 수 있는 방충망을 설치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게다가 유럽의 모기는 일반적으로 말라리아나 뎅기열 같은 질병을 퍼뜨리지 않기 때문에, 위생적 위협의 인식도 낮은 편이다.
이러한 이유로 유럽의 주택에서는 방충망 대신 철제 블라인드나 덧문(셔터)이 창문에 설치된 경우가 많다. 이는 햇빛과 외부의 시선을 차단하면서도 통풍을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방충망과는 다른 생활 문화적 선택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기후변화로 인한 여름철 평균 기온 상승은 새로운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유럽 전역에서 점차 더 길고 뜨거운 여름이 이어지고 있으며, 이는 곤충의 활동 기간 연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실제로 모기 개체 수 증가, 더 나아가 뎅기열과 말라리아 전파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제까지는 굳이 필요하지 않았던 방충망이, 앞으로의 유럽에서는 점점 더 ‘필요한 선택’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기후와 환경이 변하면서, 생활방식 또한 바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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