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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모저모

일본에 오래된 가게가 많은 이유

by 밍떡자 2025. 5. 9.

일본에는 “3대째 이어온 가게가 아니면 요리도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한 세대를 20년으로 본다면, 60년 이상 운영된 가게만이 진정한 음식점으로 인정받는 셈이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이조차도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다. 진짜 ‘전통 있는 가게’라고 하려면 보통 100년은 넘어야 한다. 이처럼 오랜 세월 대를 이어 운영되는 가게를 일본에서는 '시니세(老舗)’라 부른다. 한국의 ‘노포’와 유사한 개념이지만, 일본에서는 시니세가 훨씬 많고 그 역사도 깊다. 음식점은 물론, 떡집, 찻집, 심지어 도장 가게까지 수백 년간 한자리를 지키며 영업을 이어간다.

실제로 일본에는 100년 이상 된 가게가 27,300개, 200년 이상은 3,927개, 500년 이상은 147개, 1000년 이상 된 곳도 21개나 된다. 예컨대, 578년에 창립된 건축회사 ‘곤고구미’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으로 기록되었으며, 705년 문을 연 여관 ‘게이운칸’은 지금도 운영 중인 세계 최장수 숙박업소로 52대에 걸쳐 가업이 이어지고 있다.

이쯤 되면 단순한 생업이 아니라, 한 가문이 수백 년에 걸쳐 하나의 일을 사명처럼 이어온 셈이다. 그렇다면 일본에는 왜 이렇게 오래된 가게들이 많은 걸까? 어떻게 수백 년간 한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걸까?

이 글에서는 일본의 ‘시니세’ 문화를 통해, 전통을 지켜내는 힘이 어디서 비롯되는지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일본 문화를 지배하는 ‘와(和)’의 힘]

일본의 오래된 가게, 즉 ‘시니세’가 수백 년간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한국인들은 보통 두 가지 키워드로 설명한다. 하나는 장인정신, 다른 하나는 전통과 신의를 중시하는 문화적 기질이다. 일본인들이 기술과 명예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은 사실이며, 이러한 해석도 어느 정도 타당하다. 하지만 이보다 더 깊은 곳에 있는 핵심적인 문화 개념이 있다. 바로 ‘와(和)’다.

‘와’는 일본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열쇠다. 단순한 개념이 아닌, 일본 사회를 형성하고 지배해온 기본 정신이라 할 수 있다. ‘화할 화(和)’ 자로 표기되는 ‘와’는 일본 고유의 문화를 나타낼 때 자주 사용된다. 예를 들어, 일본 음식은 ‘화식(和食)’, 일본 옷은 ‘화복(和服)’, 일본 전통 과자는 ‘화과자(和菓子)’라고 부른다. 이처럼 ‘와’는 곧 '일본적임'을 의미하며, 그 핵심에는 조화와 질서가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 말하는 ‘사이좋게 지낸다’는 ‘와’의 의미는 단순한 우정이나 친밀함이 아니다. 그것은 각자의 역할을 벗어나지 않고, 주어진 자리에서 자기 일을 묵묵히 수행하는 것이다. 조화는 개성의 표현이 아닌 질서의 유지를 통해 성립한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일본의 역사적 계급 구조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일본 사회의 중심에는 천황이 존재하며, 그 아래로 귀족, 사무라이, 농민·장인·상인, 천민 등의 신분이 위계적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이 질서 속에서 ‘와’는 모든 계층이 자신의 위치를 지키고, 타인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것으로 실현된다. 각 계급은 그에 맞는 복장, 식생활, 주거 형식을 갖추어야 했고, 틀에서 벗어나는 개성은 용납되지 않았다.

만일 이 ‘질서’를 위협하는 요소가 나타나면, 그것은 사회의 ‘와’를 해치는 존재로 간주되었다. 그 역할을 제거하는 임무는 사무라이가 맡았다. 다시 말해, 일본 사회는 개인보다 공동체의 안정을 중시하며, 틀을 유지하기 위해 감시와 통제를 철저히 수행해 온 체계였다.

좁은 섬나라라는 지리적 조건 역시 이 문화의 정착에 영향을 주었다. 제한된 공간 속에서 갈등을 최소화하려면, 영역을 지키고 침범하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타인의 영역에 대한 배려와 동시에 자신의 영역을 지키는 행동이 ‘와’의 실천이었고, 이는 곧 사회적 안정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일본의 전통 사회는 개인의 자율보다 조화로운 전체를 추구하는 구조 속에서 발전해 왔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적 기반 위에서 수백 년간 변함없이 자리를 지켜온 시니세들이 존재할 수 있었다.

 

가정해보자. 내가 일본에서 태어나 아버지가 운영하는 우동 가게를 잇는 삶을 살고 있다고. 그것은 단지 직업의 선택이 아니라, 하나의 운명이다. 나에게 주어진 길은 아버지처럼 묵묵히 우동을 만들며, 그 가업을 지켜나가는 것이다. 나는 성실히 우동을 만들고, 맛을 개선하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했다. 그 결과 손님이 몰리고 장사가 번창했다. 자연스레 바로 옆에 분점을 하나 더 냈다. 한국이라면 칭찬받고 응원받을 일이지만, 일본에서는 달랐다. 나는 분수를 넘은 사람, 조화를 깨뜨린 인물로 낙인찍히게 된다.

일본 사회는 철저히 ‘와(和)’, 즉 조화와 질서 속에서 움직인다. 그 안에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과 영역을 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내가 가게를 확장한 행위는 다른 상인의 영역을 침범한 것으로 간주되었고, 이는 곧 공동체의 평화를 깨뜨린 행동으로 받아들여졌다.

그 결과는 혹독하다. 운이 좋다면 조용한 따돌림, 즉 이지메(집단 따돌림) 정도로 끝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마을 사람들은 나와 가족 전체를 투명 인간 취급하기 시작한다. 시장에서도, 행사에서도, 어느 모임에서도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취급된다. 더 큰 문제는 이웃 마을로 옮겨가기도 쉽지 않다는 점이다. 외부인은 곧 위협으로 인식되며, 이방인으로서의 삶은 또 다른 배제와 경계에 직면하게 된다.

더욱 극단적인 상황이라면, 과거의 일본에서는 사무라이가 직접 나섰다. 사무라이는 단순한 무사가 아닌, 질서를 지키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공동체의 평화를 해친 존재를 정리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러니 나에게 남은 선택은 단 하나였다. 장사가 잘되든 안 되든, 평생 한 자리에서 조용히 우동만 만들며 살아가는 것.

이제 다른 상황을 생각해보자. 나는 여전히 우동 가게를 운영하지만, 내 아들은 우동을 싫어한다. 대신 그는 쇠를 두드리고 칼을 만드는 일에 흥미를 느낀다. 즉, 대장장이가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 역시 용납되지 않는다. 대장장이의 일은 다른 계급, 다른 영역의 일이기 때문이다. 일본 사회에서 ‘와’는 개인의 적성보다 조화와 질서, 역할 분담이 우선이다. 아들이 자신의 뜻을 고집한다면, 가족은 물론 그 자신도 사회적 위험에 처하게 된다. 목숨조차 위태로울 수 있다.

이처럼 일본 사회는 ‘분수를 지키는 문화’ 위에 세워져 있다. 그래서 장사가 아무리 잘돼도, 가게를 확장하려는 시도는 거의 없다. 그러한 행동은 곧 질서를 어지럽히는 일, ‘와’를 해치는 행위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일본에는 규모는 작지만 오래된 가게들이 많다. 유명한 가게라도 그 크기가 초라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흔한 이유다. 하지만 이 작고 오래된 가게들은 지역 사회에 깊이 뿌리내려 있어 단골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외부의 경기와는 무관하게, 안정적인 수익 구조가 유지되는 것이다. 가문이 이어지기만 한다면, 가게는 좀처럼 문을 닫지 않는다.

일본에 수백 년 된 가게들이 많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들이 그렇게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