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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모저모

유럽에 화장실이 없는 이유

by 밍떡자 2025. 5. 7.

유럽을 여행해 본 사람이라면 갑작스러운 생리 현상으로 화장실을 찾아 거리를 헤매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익숙한 도시 풍경 속에서 유독 찾기 힘든 존재가 있다면, 바로 ‘공공화장실’이다. 지하철역, 도심 광장, 대형 쇼핑몰, 식당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다. 화장실이 있더라도 문은 잠겨 있거나, 요금을 지불해야만 입장할 수 있다. 놀랍게도 유럽에서는 백화점이나 레스토랑처럼 상업 시설 내의 화장실조차 무료로 개방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적게는 0.5유로, 많게는 1.5유로까지, 우리 돈으로 따지면 한 번에 약 1,400원 정도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단 한 번의 생리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부담해야 하는 비용치고는 절대 적지 않다. 이러한 시스템은 단순히 불편을 넘어, 특정 계층에게 실질적인 제약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왜 유럽은 공공화장실에 이렇게 인색한 것일까? 유럽은 분명히 부유한 국가들이 모여 있는 대륙이며, 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를 자랑하는 곳이다. 의료, 교육, 실업보험 등 거의 모든 사회보장 제도가 잘 갖추어져 있는데, 어째서 공공화장실만은 예외가 된 것일까?


유럽 화장실의 역사
유럽의 수세식 화장실 역사는 놀랍도록 오래되었다. 고대 그리스 크레타섬에서는 기원전 2000년경, 지금의 좌변기와 유사한 구조의 수세식 화장실이 사용되었다. 돌의자에 앉아 볼일을 보면 물이 흘러 배설물을 씻어냈고, 냄새가 줄어들자 화장실은 실내로 들어오게 되었다. 로마 제국은 이를 한층 발전시켰다. 상하수도 시스템을 활용해 가정마다 수세식 화장실을 설치했고, 로마 시내에는 400여 개의 공중화장실이 운영되었다. 당시의 화장실은 단순한 위생 시설을 넘어, 공동체 생활의 한 공간이기도 했다. 그러나 로마가 몰락하면서 이러한 문명은 쇠퇴했다. 중세 유럽에서는 금욕주의적 기독교 가치관이 퍼지며, 신체에 대한 부정이 청결과 위생의 후퇴로 이어졌다. 물에 닿는 것조차 기피되었고, 목욕과 실내 화장실은 점차 사라졌다. 사람들은 요강을 사용했고, 그 배설물은 거리로 버려졌다. 16세기 이후 상황은 더 악화되었다. 몸에서 나는 악취를 가리기 위해 향수가 발달했으며, 오물 범벅이 된 거리를 피하려고 우산과 망토가 유행했다. 귀부인을 업고 다니는 직업까지 생겨날 정도로 위생 상태는 심각했다. 화장실의 역사는 단순한 생활상의 변화가 아니다. 그것은 도시 인프라, 종교적 가치, 인간 존엄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오늘날 유럽의 공공화장실 정책은 이 같은 역사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유럽의 화장실이 부족한 이유

1.  유럽 공중화장실의 역사적 배경

유럽 공중화장실의 유료화는 단순한 현대적 정책이 아니라, 고대로부터 이어져 온 역사적 유산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서기 74년, 로마 제국의 황제 베스파시아누스(Vespasianus)의 조치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로마는 잦은 전쟁과 대규모 도시 정비로 인해 재정난을 겪고 있었고, 황제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공중화장실에 사용료를 부과하는 정책을 도입했다.

화장실 이용을 유료화하는 동시에, 거리나 공공장소에서 용변을 보면 무거운 벌금을 부과해 시민을 공식 시설로 유도했다. 이는 단순한 행정 조치가 아닌, 도시 질서와 재정 확보라는 두 목적을 동시에 달성한 전략이었다. 시민들은 이 정책을 비판하며 “황제의 체통에 맞지 않는다”고 반발했지만, 황제는 “돈은 냄새가 나지 않는다(Pecunia non olet)”는 유명한 말로 응수했다. 이 표현은 지금까지도 '수단보다 결과가 중요하다'는 의미로 쓰인다.

이처럼 유럽 사회는 공중화장실 유료화와 같은 제도에 오랜 시간 익숙해져 왔다. 유료 이용과 강제 집행이라는 이중 구조는 단순히 경제적 이유만이 아닌, 오랜 행정적 관습과 문화적 수용의 결과이기도 하다.

 

2. 유럽인의 화장실 인식

유럽에서는 공중화장실을 세금이 아닌 개인이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서비스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깨끗한 화장실을 유지하기 위해선 사용료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일반화되어 있으며, 프랑스의 ‘마담 삐삐’처럼 전문 관리인이 있는 유료 화장실은 오히려 청결과 안전 때문에 더 선호되기도 한다. 또한 화장실은 민간 비즈니스의 영역으로 확장되었으며, 사설 화장실은 비교적 청결하지만 요금이 높다. 이는 시설 파손, 도난 등 반복적인 문제에 대응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결국 유럽에서의 화장실 유료화는 문화적 인식, 사회 문제, 운영 현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 할 수 있다.


3. 도시 구조와 시설 확장의 한계

유럽의 도심은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 지어진 역사적 건축물들이 밀집해 있으며, 이들 대부분은 건축 보호법에 따라 외부 구조 변경이나 내부 공사가 엄격히 제한된다. 좁은 골목에 돌로 지어진 건물들은 배관 설치가 어렵고, 기존 구조에 화장실을 추가하는 것조차 법적으로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또한 유럽은 석회질이 많은 경수 지역이 많아 배관이 쉽게 부식되며, 주기적인 교체와 유지 관리에 상당한 비용이 든다. 이러한 여건으로 인해 공중화장실을 새로 설치하거나 유지하는 데 큰 부담이 따르며, 결과적으로 적은 수의 화장실만 유지되고 대부분은 이용 요금으로 운영 비용을 충당하게 된다. 만약 한국의 도심도 조선시대 건축물이 대부분이었다면, 유사한 어려움을 겪었을 가능성이 크다.

 

유럽의 화장실 문제는 단순히 하나의 이슈로 치부할 수 없는, 역사적, 사회적 요인이 얽힌 복합적인 문제임을 알 수 있다. 천문학적인 세금이 여러 분야에 사용되지만, 화장실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점은 의문을 남긴다. 유럽의 여러 도시는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다양한 대안과 정책을 시도하고 있지만, 현재까지는 완벽한 해결책을 찾지 못한 상태이다. 이러한 상황은 화장실 문제의 복잡성과 더불어, 그 해결을 위한 지속적인 고민이 필요함을 시사한다.